암의 발생 과정으로 살펴본 잠복암의 성장 속도
잠복암이란, 몸속에 숨어서 거의 활동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암입니다.
부검을 통해 알게 된 잠복암의 존재
암에 대한 연구를 쭉 하다 보니까 잠복암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동양에서는 부검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지만, 서양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사망 원인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부검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부검하다 보니까 이상한 소견이 발견됐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서 암이 존재하더라는 것입니다.
40~50세 여성의 40%, 거의 반수가 현미경에서 보일 수 있는 아주 작은 현미경적 유방암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50~60세 남성의 50%, 반수에서 전립선암이 생겼다고 합니다. 또 70세 이상 되면 남녀 모두 갑상선에 암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암을 가지고 있는데, 통계적으로 암 환자는 왜 훨씬 더 낮을까요? 암세포가 있다고 모두 암으로 간다면 70세 넘으면 갑상선암에 다 걸려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더라는 거죠.
우리 몸에 숨어있는 잠복암과 미세암
우리 몸에 잠복하고 있는 암의 수가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결국 암이 있다고 다 암이 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잠복암(occult cancer)이란, 몸속에 숨어서 거의 활동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암입니다.
미세암이란, 아주 작아서 검사해도 보이지 않는 암입니다. CT, MRI 검사에서 암이 나타나려면 콩알, 팥알 크기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좁쌀, 깨알 크기 정도의 암은 검사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미세암에는 활동 중인 암도 있고, 잠복암도 포함됩니다.
암의 발생 과정 중 잠복암의 성장 속도
암의 발생 과정을 살펴보면 1970~80년대 초기까지 많은 연구를 해서 암이 어떻게 발생하는가는 밝혔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일, 왜 부검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잠복암이 많은가에 대한 의문은 최근에 밝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암세포들은 증식할 능력은 있지만, 대개 영양결핍으로 죽게 됩니다. 암 덩어리들은 스스로 우리 몸속에서 움직입니다.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자기가 살기 좋은 환경을 찾아서 이동하는 대장정을 합니다. 암세포들이 혈관 근처에 자리 잡으면 혈관에서 스며 나오는 영양소로 버티고 갈 수 있습니다.
살아남은 암세포가 0.5㎣ 크기로 커지려면 보통 19회 정도 분열해야 합니다. 암세포 하나가 19회 정도 분열하는 데는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립니다. 0.5㎣ 크기의 암세포가 2㎣로 커지려면 21회 정도 분열합니다. 2㎣인 암세포가 좁쌀 크기 정도로 자라기 위해서는 3번만 더 분열하면 됩니다.
그런데 암세포가 0.5㎣에서 2㎣까지 크려면 5~10년의 세월이 걸립니다. 다시 말해 성장을 적극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거의 움직이지 않는, 목숨만 붙어 있는 상태를 이렇게 오래 끌고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암이 바로 잠복암입니다. 부검하면 보이는 암은 바로 여기에 속해 있는 암을 말합니다. 그런데 잠복암은 어떤 계기로 인해 급속도로 성장합니다.
다음번에는 미세한 잠복암이 왜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아 있을 수 있는지, 어떻게 살아남는지에 대하여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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