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환자의 권리, 생존기간과 의미있는 삶

생존기간보다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내려는 태도

생존기간만 바라보면,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무서워집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오랜 기간을 산다 해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생존기간 자체만 보지 말고,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일지에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국내 첫 합법적 존엄사에 대한 기사가 났습니다. 존엄사법, 즉 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한 기사입니다. 50대 암 환자가 임종에 가까워지면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치료 등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힘으로써 연명의료 중단을 선택했다는 기사였습니다.

 

사실 의사로서 느끼기에 일면 한심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존엄사는 환자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동안 환자의 권리가 무시당해왔다는 뜻입니다.

 

존엄사에 대한 잘못된 의식, 경직된 사회제도 탓

 

존엄사 관련 환자의 권리가 무시되어 온 것은 우리 사회 제도가 경직되어있기 때문입니다. 1997년 12월에 있었던 보라매병원 사건이 촉매가 되었는데요. 이 사건으로 인해 특히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은 크게 당황했습니다.

 

뇌를 다친 환자가 입원을 했습니다. 환자가 뇌사 상태에 이르자 인공호흡기를 달고 치료가 계속 되었습니다. 그런데 치료비 부담 때문에 보호자가 환자의 소생 가능성에 대해 문의했습니다. 하지만 환자가 소생할 가능성은 적었고, 식물인간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의사를 설득해서 퇴원을 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상황이 좋지 않았고, 소생 가능성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인공호흡장치를 제거해달라고 병원에 요청했지만, 병원에서 거부했습니다. 어쨌든 환자는 퇴원을 했고 집에서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이해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가까운 친척이 의사를 고발했습니다. 그렇게 이 사건은 결국 대법원까지 갔습니다. 대법원에서 의사에게 살인방조죄가 있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의사는 행정처분을 받았습니다.

 

의미 없는 상황에서 인공적인 생명 연장, 과연 옳을까

 

그 의사 입장에서는 너무나 날벼락 같은 판결이었을 것입니다. 사회가 치료비를 책임지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의사가 살인을 방조하였다는 판결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사건 이후로 대학병원 의사들은 초긴장 상태에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살인방조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퇴원을 시켜서도 안 됩니다.

 

2009년 김 할머니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환자가 뇌사 상태에 들어갔는데 병원에서 절대 인공호흡기를 제거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소송을 통해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런 모든 일들은 우리 사회가 너무 경직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그로 인해 환자의 권리가 박탈당해온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이삼십 년 전부터 존엄사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의미 없는 삶을 인공적으로 유지하는 것에 대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삶의 의미는 내가 부여하는 것, 생존기간만 바라보지 말자

 

암이 많이 진행된 상태에 있는 환자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물론 최종 결정은 환자분이 하는 것입니다. 다만, 많은 분들이 너무 생존기간 자체에만 집착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생존기간만 바라보면,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무서워집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오랜 기간을 산다 해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생존기간 자체만 보지 말고,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일지에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나의 하루하루에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좋습니다. 내 삶에 나 스스로 가치를 부여한다면 그것이 의미 있는 삶이 됩니다.

 

사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노화병, 즉 늙어 죽는 불치병에 걸려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불치병을 의식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결국은 늙어 죽을 것이라고 두려워한다면, 삶 자체가 의미를 잃게 됩니다.

 

암과 노화는 다르지만, 똑같이 생각하면 됩니다. 완치되기 어려운 상태에 있는 암 환자분들, 생존기간을 의식하지 말고 하루하루 의미 있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것이 가장 보람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No comments
Write CommentLIST
WRITE COMMENT

위로이동